저자 | 황호덕, 이상현 |
정가 | 38000원 |
상세정보
-외국인들의 사전 편찬 사업으로 본 한국어의 근대
본서는 ‘전파 번역’의 과정을 그들이 남긴 이중어사전 및 관련 기록을 통해 고찰하면서, 이 입장에 비친 ‘문화 내 번역’ 및 ‘수용 번역’의 실태를 소위 어휘사 및 개념사적 수준에서 환기시키고자 한다. 특히 외국인 선교사들의 번역 작업과 이들이 파악한 개화기 및 식민지 시기의 언어 상황이 이 책의 논제가 될 것이다.
제1부에 실린 세 편의 글을 통해 한국어 관련 이중어사전의 통국가적 생성 과정과 어휘 유통의 동선에 대한 실증적 검토, 한영사전 및 영한사전을 주 대상으로 한 사전 간의 계보적 관련성에 대한 검토, 대역 관계 확정을 위한 고민의 행로에 대한 묘사를 행했다. 주지하다시피 사전은 상호 참조-베끼기 현상이 가장 현저한 텍스트이다.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전들 간의 참조 체계를 통해 근대 한국어의 변천뿐 아니라, 초기 한국학 연구의 구성 과정이 얼마간 짐작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이 과정을 통해 근대 초입에서 이루어진 외국인 선교사들의 언어 정리 사업 및 학술연구가 차후의 한국어 정리 사업이나 한국학의 편제 구성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당대에는 이 영향이 실감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조들의 실감이 우리에게는 부인해야 할 만감(萬感) 어린 사건들로 망각될 수 있음을 얼마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제2부에서는 한국 근대 개념어 연구에 있어서 외국인들의 한국어 연구 및 외국어에 대한 의미 고정 과정이 함의하거나 시사해줄 수 있는 ‘영역’을 표시해보려 했다. 이를테면 이중어사전의 어휘 대역 방식에 드러나는 구문맥(歐文脈)과 한문맥(漢文脈)의 착종이 의미하는 바를 ‘소설’에 있어서의 신문명어=번역어가 어떠한 서사 내적 동력을 발휘하는지를 살펴보기도 했고, 외국인 선교사들의 한국문학 번역이 구미 한국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일부 검토해 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번역의 가치, 번역물의 선정 등이 이른바 정전의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제기해 보았다. 한편 한국어로 하는 학술에 있어서 초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소위 이질언어 간 번역을 생략한 문화 번역 과정을 지도화해보려 한 선교사들의 한국학 관련 서지 정리 작업 및 학술 대역어 검토 작업을 통해 우리는 한국학 담론의 초기적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그려낸 그림이 차후의 학술 제도나 개념, 범주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제2부의 마지막 장에서는 한자어 중심의 대역 관계가 서구어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서 일부 해체되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소위 음역(音譯) 현상으로 바뀌게 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모던 외래어’의 문제를 통해 살펴보았다. 소위 한문맥(漢文脈) 아래서의 구문맥(歐文脈)의 상승적 절합이, 구문맥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번역 없는 번역[音譯된 외래어]’을 확산시키는 과정에 대해 논하였다. 한자 문명을 통과하고 회전하며 ‘번역되거나/번역한 동아시아의 근대’의 출발 및 교통 과정으로부터, 미국발 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시작된 번역 없는 모더니즘까지의 역사가 산발적이나마 뚜렷이 눈에 들어오리라 믿는다.